250324 해설이 있는 클래식 음악감상 _ 이건실 교수
평화를 빕니다~~^^
세 번째 수업... 역시나 우리 교수님께서는 많은 분들이 수업을 들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시다.
어떻게 우리 이건실 교수님의 소원을 들어드릴꾜~~ 흑흑:::
결국 내가 빠지지 않고 수업에 참여하는 수밖에...
그런데 마지막 주에는 수업을 빠질 수밖에 없어서... 회사업무가 먼저이니 말이다.
이 글은 4월이 되어서 작성 중이지만 수업의 퀄리티는 단연 최고임은 확실하다.
매달 6달의 금액을 드려야 맞을 듯하다.

입구 쪽에 기도하는 엄마생각 동상


시간이 1시간 이상 남아서 돌아다니는데
가톨릭평생교육원 입구에 이런 간판이...
얼마나 출입을 하면 이런 걸 붙여두었을까
참고로 광주대 근처 큰 교회가 있는데
코로나 때 그곳이 신천지라는 것을 알았다.
각자 본인들이 원하는 종교를 갖는 것이니
뭐라고 할 필요는 없지.
< 이건실 교수님 수업자료를 올립니다. >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Mstislav Leopoldovich Rostropovich
(1927년 3월 27일~2007년 4월 27일)
20세기의 위대한 첼리스트이자 선도적 지휘자 중 한 명인 로스트로 포비치의 열정적이고 뛰어난 연주 스타일은 때때로 그의 고국 소련에서의 망명을 포함한 그의 삶의 격동의 사건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였습니 다. 그는 악기의 모든 음역에서 눈에 띄게 충만하게 투사하는 능력 외에도 당시 표준 첼로 레퍼토리에서 모든 음악 시대의 스타일을 완벽하게 지배했습니다.
평생 걸작을 공부하고 연주한 결과의 정점으로 여겨지는 바흐의 6개 첼로 모음곡을 녹음한 1991년의 녹음(이 작품의 첫 녹음)의 1995년 Warner Classics와 EMI Classics에서 발매기념글에서 음악가들이란 매혹적일 정도로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들은 숫기가 없어 보일 정도로 겸손한 반면, 또 다른 어떤 이들 은 떠들썩하게 그들 자신의 의식을 찬양한다. 그러나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는 그 자신을 있는 그대로 즐기며, 삶과 음악을 사 랑하고 자신의 독특한 영어로 삶과 음악에 대해 열렬하게 이야기하 길 즐긴다.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 당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팔로 당신을 감싸 붙들고, 잘 알려진 별명인 '슬라바'- 색슨족의 혀를 고달픈 게 하는 '스티슬라프'를 대신하는 편리한 명칭이다- 로 그를 호칭하 지 않을 수 없게끔 한다. 그의 설득력은 엄청나다. 물론 로스트로포비치 가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나 브리튼 같은 작곡가의 팔을 비틀어서 새 작품을 써 내게 하는 유일한 연주자는 아니다. 그러나 로스트로 포비치 말고 또 누가 프로코피예프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나 쇼스타코 비치의 <첼로 협주곡 1번>, 브리튼의 <첼로 교향곡> 같은 견실한 불후의 걸작을 탄생시키는 동인(토츠)이 될 수 있겠는가? 1970년대 중반로 스트로포비치가 브레즈네프 정권하의 소비에트 연방을 버리고 망명길에 오르자, 소련 정부는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협주곡 1번> 악보에서 로스 트로포비치의 (헌정자로서의) 이름을 삭제해 버렸지, 이 곡에서 그의 인격적인 흔적마저 지워 버릴 순 없었다. 독주부가 두 옥타브에 걸쳐 있는 첼로 협주곡이 어디 흔하겠는가?
그가 하는 모든 일에는 거대한 뭔가가 있다. 지금 소개하는 바흐의 <무 반주 첼로 모음곡> 녹음을 예로 들어 보자. 이 녹음 프로젝트는 로스트 로포비치 본인의 의지에 의해 촉발되었고, 그래서 자신의 보폭에 맞춰 포함시키지 않아야 할 연주를 골라 냈다. 만약 내가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건 바로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할 연주나 다름없다!" 쓰레기통에서 마 지막 운명을 맞은 수많은 연주가 비밀로 남아 있지만, 로스트로포비치의 예술적 이상에 대한 헌신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의 말에 따르면 <모음곡 6번>은 거대한 '첼로를 위한 교향곡'이다. <모음곡 5번>의 '사 라방드'는 로스트로포비치가 따로 떼어 내어 단독으로 연주하길 즐기는 곡이다."내게 이곡은 ' 가장 천재적인 작품' (most genius composition)이다 - 단 세 단어로 압축했지만, 얼마나 귀중한 곡인지 모른다! 이 몇 안 되는 음표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듣는 이와 나누는 건 불가능한 일이 다." 불가능하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 바로 그것이 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가 가장 사랑하는 도전이 아닐까?
Stephen Johnson, 1995
J.S.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바흐는 각각의 칸타타를 하루 이틀 사이에 써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기악곡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알려진 정보가 없으며, 형식에 근거 한 추측은 상당한 위험을 수반하는 일이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 나타와 파르티타>에는 작곡가의 친필 서명이 남아 있으나,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관련해서라면 믿을 만한 정보는 현 통용되고 있는 악보가 전부이다. 이 중 두 종류의 악보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바흐의 아내 였던 안나 막달레나의 소장본인 1730년 판과, 이보다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바흐의 제자인 요한 페터 켈너가 필사한 1726년 판이 그것이다. 켈너의 필사한 원본은 당시 기준으로 볼 때 최근 판본은 아니었던 듯하다. 왜냐하면 바흐는 라이프치히에서 보낸 첫 해 (1723년 그는 이곳의 카펠마이스터로 임명되었다)에 거의 교회 음악에 집중했고, 간간이 그의 가족과 제자들을 위한 건반 작품을 작곡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무 반주 첼로 모음곡>은 바흐가 라이프치히에 오기 이전의 일터였던 코텐 시절 (1717~23)에 작곡했다고 보는 것이 유력한 견해이다. 바흐가 쾨텐에서 주로 작곡하고 연주한 곡은 실내악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 곡의 초연은 첼리스트 크리스티안 베른하르트 리니케에 의해 코텐의 레 오 폴트 공작의 궁정에서 이루어졌다고 추정되고 있다. 바흐는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처음 4곡은 당시의 일반적인 첼로를 염두에 두고 작곡한 반면, <모음곡 5번>은 최고현을 한 음 낮춘 상태로 조율해 연주해야 한 다. 이러한 스코르다투라 (scordatura: 패시지의 연주를 쉽게 하고 보통 쓰이지 않는 화음이 나오게 하는 등 음색에 변화를 주기 위해 사용하는 조율법)는 바이올린 음악에서는 상당히 흔히 사용되었으나 (비버의 미 스터리 소나타>가 좋은 예이다), 첼로에서는 그다지 널리 사용되지 않는 기법이다. <모음곡 6번>은 원래 5현 악기를 위해 작곡된 곡이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바흐 부흥 운동 시기에 출판되었으나 (1825년과 1826년 의 출판본이 존재한다), 단순히 진귀한 작품 혹은 연습곡 수준 이상의 대접은 받지 못했다. 이 작품의 진정한 음악성을 발견한 인물은 1920년 대와 1930년대에 연주회와 녹음을 통해 이 곡을 세상에 알린 파블로 카잘스다. 이 음반의 녹음에서 로스트로포비치가 해석의 기초로 사용한 판 본은 안나 막달레나 바흐의 필사본이다. Clifford Barlett, 1995
그의 소련 시민권은 1990년에 회복되었습니다.
그는 2007년 3월 크렘린에서 열린 80번째 생일 축 하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한 달 후 장암으로 사망했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는 그의 동상은 그의 85번째 생일이었던 2012년 모스크바 에서 공개되었습니다.

그리고 흑인영가에 대해서 ...


뭔가 울림이 있었다. 무얼까...